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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에게 버림받고 소설로 재기했죠'

관리자 2016-01-30 조회수 3,704

[TV조선 리더스포럼 기조연설 맡은 '하우스 오브 카드' 원작자 英 돕스]

IS 테러는 창의력 옥죄는 행위… 北도 꿈과 상상력까진 못 막아
"창의성은 자유민주주의서 싹터"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前) 영국 총리는 자신의 당선 소식을 맨 처음 전했고 수많은 선거도 함께 치른 최고참 참모를 자신과 의견을 대립한다는 이유로 망설임 없이 내쳤다. (대처의) '무자비한 핸드백'에 맞아 쓰러진 그는 온갖 술수를 동원해 총리에 오르는 과정을 그린 정치 스릴러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를 내놓으며 부활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극찬했고, 우리에겐 미국판 TV 드라마로 더 널리 알려진 이 소설의 탄생 비화(秘話)다.

이 작품의 원작자인 영국 상원 의원 마이클 돕스(Michael Dobbs·67)경이 18~19일 TV조선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창조 코드, 한국을 바꿀 6가지 혁명'을 주제로 개최하는 '글로벌 리더스 포럼 2015'에 참석한다. 그는 첫날 '창의성의 시대, 상상하고 꿈꾸라'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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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카드’의 원작자로 18~19일 TV조선 주최로 열리는‘글로벌 리더스 포럼 2015’에서 기조연설을 맡아 한국에 온 영국 상원 의원 마이클 돕스경. /박상훈 기자
        
청바지 차림에 감색 재킷, 푸른색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17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존경이 아닌 공포'라는 비정(非情)한 세계관을 가진 소설 속 주인공과 달리 온화한 미소가 매력적이었다. 그는 "(대처한테 버림받고) 내 삶이 혼돈에 빠졌을 때 나를 구원한 것은 '소설 쓰기'라는 창의적 활동이었다"며 "창의성(creativity)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근원적 힘"이라고 말했다. 26년 전 나온 소설 역시 미국 인터넷 기업 넷플릭스의 신기술에 의해 최근 새 생명을 얻었다. 그는 "사람들은 이제 원할 때 어디서나 TV나 PC, 스마트폰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볼 수 있다"며 "만약 내가 지금 20대라면 스타트업(창업 기업)에 투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처와 함께 영국병을 치유했던 경험은 정치적 신념의 근원이 됐다. 미국 보스턴 글로브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1977년 귀국해 정치를 시작한 것도 '유럽의 병자(病者)'로 불렸던 고국을 좀 더 나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는 "정치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가치를 명확히 알고, 이를 대중이 믿고 따르게 하는 것"이라며 "대처는 수많은 공격과 조롱에 굴하지 않았고 '적은 세금과 많은 복지 혜택은 불가능하다'는 신념을 지켰다"고 말했다. 그는 "'생산하지 않은 부(富)는 나눌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얻은 교훈"이라고 했다. 영국 정가(政街)에서 '아기 얼굴의 암살자(baby faced hit man)로도 불렸던 그는 "필요하면 친구도 정계에서 쫓아내는 것이 보수당에서 내 역할이었다"고 했다.

파리에서 발생한 IS(이슬람국가)의 테러를 보는 시각도 단호했다. 그는 1984년 보수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자신이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일하던 방에서 폭탄이 터져 다섯 명의 동료를 잃었다. IRA(아일랜드공화국군)가 저지른 '브라이튼 폭탄 테러'였다. 당시 대처는 테러 발생 장소에서 예정된 행사를 강행했다. 그는 "유럽을 나눴던 베를린 장벽과 '철의 장막'을 무너뜨린 것은 폭탄이나 미사일이 아니라 자유세계의 가치관과 이를 간절히 원한 수백만명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며 "우리는 창의력을 옥죄는 테러와 공포에 결코 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이번 포럼에서 논의할 창의성은 자유세계와 시장경제, 민주주 의에서만 싹틀 수 있다"며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사회라도 꿈과 상상력만은 가로막을 수 없다"고 했다.

1977년부터 11년간 함께 일했던 대처 전 총리와 마지막에 의견이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묻자 "오랫동안 충성했던 정치인과 나눴던 비밀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수많은 출판사의 회유에도 회고록이 아닌 소설을 발언 수단으로 택한 이유였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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